"게임이 뭐가 좋아?" 혹은 "그게 무슨 스포츠야?"라고 말해본 적, 한 번쯤은 있으시지 않습니까?

 저도 그랬습니다.

 어두운 방에 틀어박혀 화면만 들여다보는 아이들을 보면서, '저게 무슨 도움이 될까' 싶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저는 여러분께 당당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e스포츠는, 우리가 생각해온 그 '게임'이 아닙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저는 e스포츠가 무엇인지, 왜 전 세계가 여기에 주목하는지, 그리고 이것이 우리의 삶과 미래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함께 나눠보고자 합니다.

 무예와 체육을 사랑하는 여러분께서라면, 오늘 이야기가 결코 낯설지 않으실 겁니다.

 

1. e스포츠란 무엇인가? 

 e스포츠, 영어로는 'Electronic Sports', 즉 전자 스포츠입니다.

 '전자'라는 말이 붙었다고 해서 가볍게 여기시면 안 됩니다.

 전자 기기를 매개로 하되, 그 안에서 벌어지는 것은 분명한 경쟁이고, 전략이고, 훈련이며, 팀워크입니다.

 태권도를 생각해 보십시오.

 발차기 한 동작에도 수십 가지의 전략이 담겨 있고, 상대의 움직임을 읽는 눈이 필요하며, 수천 번의 반복 훈련이 뒤따릅니다.

 e스포츠도 다르지 않습니다.

 실시간으로 변하는 전황을 분석하고, 0.1초의 판단으로 팀 전체의 승패가 갈리며, 선수들은 하루 수십 시간씩 피나는 연습을 반복합니다.

 단지 그 경기장이 흙 위가 아닌 화면 안에 있을 뿐입니다.

 과거에는 'e스포츠는 게임일 뿐'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다릅니다.

 전 세계 6억 명 이상의 팬이 이를 시청하고, 국가 차원의 대표팀이 구성되며,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무려 7개의 정식 메달 종목으로 채택되었습니다.

 IOC는 2024년 별도의 '올림픽 e스포츠 게임' 창설을 승인하기도 했으나, 현재는 파트너십 문제로 계획이 조정 중에 있습니다.

올림픽 정규 종목 편입까지는 아직 갈 길이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방향으로의 흐름 자체는 분명합니다.

이제 e스포츠는 세계가 공인한, 엄연한 스포츠입니다.

 

2. 두뇌를 훈련하는 스포츠,  '지능 스포츠'의 탄생

여기서 한 가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e스포츠 전문가들은 이것을 단순한 오락이 아닌 '고도의 지능 스포츠'라고 부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e스포츠의 경기 안에서 선수들은 끊임없이 생각합니다.

지금 이 순간 어느 지점을 공격해야 하는가, 아군의 체력을 고려했을 때 후퇴가 맞는가 전진이 맞는가, 상대방의 다음 행동은 무엇일 것인가. 이 모든 판단이 1초도 되지 않는 시간 안에 이루어집니다.

바둑이 두뇌 스포츠로 인정받는 이유를 생각해 보십시오.

바둑도 결국 수많은 경우의 수를 계산하고, 상대의 의도를 읽으며, 최선의 수를 선택하는 과정입니다.

e스포츠는 그것을 실시간으로, 팀 전체가 동시에, 훨씬 빠른 속도로 수행합니다.

전문가들은 이 과정이 뇌를 지속적으로 자극하고 발전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말합니다.

전략적 사고, 순간 판단력, 집중력, 기억력, 그리고 팀원과의 소통 능력까지. e스포츠는 이 모든 능력을 동시에 훈련하는 종합 두뇌 운동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은 놀라운 방향으로 응용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전통 격투 스포츠인 스모를 e스포츠화하여, 노인들의 치매 예방 프로그램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실버 e스포츠'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시도는, e스포츠가 젊은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전 연령층의 인지 건강을 지키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어르신들이 게임 속 스모 경기를 하며 뇌를 자극하고, 사회적 교류를 나누며, 삶의 활력을 되찾는 모습. 이것이 e스포츠의 또 다른 얼굴입니다.

 

3.  거대한 시장이 움직이고 있다

 이제 조금 냉정하게 숫자를 들여다보겠습니다.

 2025년 기준 글로벌 e스포츠 시장 규모는 약 3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4조 원에 달합니다.

 그리고 매년 약 19%씩 성장하고 있습니다.

 19%가 어느 정도냐면, 이 속도라면 몇 년 안에 시장 규모가 두 배가 됩니다.

 이 시장은 어디서 돈을 버는 걸까요?

 가장 큰 수입원은 기업 후원(스폰서십)입니다.

 전 세계 유명 브랜드들이 e스포츠 팀을 후원하고 대회에 로고를 붙입니다.

 그 다음은 미디어 중계권입니다.

 경기를 방송할 권리를 사는 것이지요.

 그리고 팬들이 직접 지갑을 여는 굿즈 판매, 유료 멤버십, 오프라인 이벤트 티켓까지.

 한국의 주요 구단들은 팬 플랫폼을 통한 유료 멤버십 운영, 선수 IP 브랜드화, 굿즈 판매 등으로 수익 구조를 다각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T1은 2025년 재출범 이후 처음으로 흑자 전환에 성공하며 , e스포츠 구단도 충분히 지속 가능한 사업체가 될 수 있음을 온 세계에 증명해 보였습니다.

 지역별로 보면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전 세계 e스포츠 시청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시장을 주도합니다.

 그 중심에는 중국과 한국이 있습니다.

 한국은 전 세계 e스포츠의 종주국으로, e스포츠 전문성의 상징적 중심지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동남아시아는 지금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입니다.

 저렴한 스마트폰 보급 덕분에 누구나 모바일로 e스포츠를 즐길 수 있게 되면서, 수천만 명의 새로운 팬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새롭게 e스포츠 강국으로 떠오르는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사우디아라비아입니다. 석유에 의존하던 경제 구조를 바꾸기 위한 국가 전략 '비전 2030'의 핵심 사업 중 하나로 e스포츠를 선택했습니다. 리야드에서 열리는 e스포츠 월드컵은 전 세계 최고의 팀들이 모이는 메가 이벤트로 자리 잡았으며, 국가 차원에서 전용 아레나와 훈련 시설까지 짓고 있습니다.

e스포츠는 이미 취미가 아닙니다. 국가의 미래를 거는 전략 산업입니다.

 

4. 한국,  종주국의 자존심

 이제 우리 이야기를 해봅니다.

 한국은 e스포츠의 종주국입니다.

 1990년대 말, PC방 문화와 함께 스타크래프트가 전국을 휩쓸던 시절, 이미 한국은 e스포츠의 씨앗을 뿌리고 있었습니다.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처음 생겨난 곳도 한국입니다.

 세계 최초의 e스포츠 전용 방송국도 한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솔직히 말씀드리면 위기감도 있습니다.

 글로벌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지는 동안, 국내 e스포츠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중국의 자본력, 동남아의 성장 속도, 사우디의 국가 투자 앞에서 한국이 종주국으로서의 위상을 계속 유지하려면 더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앞장서고 있는 곳 중 하나가 바로 국제e스포츠진흥원입니다.

 전옥이 이사장께서 이끄는 이 기관은 흥미로운 출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래 금융 컨설턴트 출신이었던 전옥이 이사장께서는 2016년 지인의 요청으로 e스포츠 분야에 발을 들였다가, 이 산업의  가능성에 완전히 빠져들어 지금은 이 일에 전적으로 헌신하고 있습니다.

 전옥이 이사장께서는 e스포츠를 단순한 게임 산업이 아닌, 교육이자 직업이자 복지의 영역으로 끌어올리고자 합니다.

 2017년에는 중국 북경화지아대학에 한중 공동 'e스포츠학과'를 개설하고 한국인 강사가 직접 수업을 진행하게 했습니다. 종주국의 지식과 노하우를 세계로 수출한 것입니다.

 또한 e스포츠 관련 자격증 20여 종의 표준화 작업에 참여하며 전문 인력 양성의 기틀을 다지고 있고, 전국 지역 연합회장들과 함께 e스포츠 산업 지도자 교육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5. 모두를 위한 e스포츠,  세대를 넘어

 e스포츠에 대한 가장 큰 오해 중 하나는, 이것이 젊은이들만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틀렸습니다. 아니, 반만 맞습니다.

 현재 e스포츠 시청자의 약 70%가 10세에서 35세 사이의 젊은 층인 것은 사실입니다.

 디지털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른바 'MZ세대'에게 e스포츠는 축구나 야구만큼 자연스러운 스포츠입니다.

 그러나 e스포츠는 이미 어르신들에게도 다가가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일본의 실버 e스포츠 사례처럼, 간단한 조작으로 즐길 수 있는 게임들이 노인들의 인지 기능 유지와 사회적 교류의 도구로 쓰이고 있습니다.

 복지관에서 어르신들이 태블릿을 들고 서로 경쟁하며 웃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것 자체가 생활 체육이고, 그것 자체가 e스포츠입니다.

 청소년들에게는 어떨까요.

 단순히 게임을 즐기는 것을 넘어, 팀원과 소통하고, 전략을 세우고, 패배를 분석하고 다시 도전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성장합니다.

 '하남시 청소년 e스포츠단'처럼 지자체 차원에서 공식적인 틀을 만들어주면, 이것은 단순한 오락이 아닌 건전한 성장의 장이 됩니다.

 가족이 함께하는 e스포츠도 있습니다.

 축구 게임, 레이싱 게임처럼 규칙이 직관적인 종목들은 부모와 자녀가 함께 웃고 경쟁할 수 있는 훌륭한 소통의 매개가 됩니다.

 명절에 온 가족이 모여 화투 대신 레이싱 게임 한 판을 하는 날이 머지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국제e스포츠진흥원이 꿈꾸는 미래입니다.

 e스포츠를 국민 스포츠이자 생활 체육으로 정착시키는 것.

 어르신에게는 활기찬 노후를, 청소년에게는 꿈과 진로를, 가족에게는 화합의 시간을 주는 복합 문화 활동으로서의 e스포츠.

 

6.  기술의 진화와 e스포츠의 미래

 e스포츠는 기술과 함께 진화합니다.

 지금도 인공지능(AI)은 선수들의 플레이를 분석하고 코칭에 활용됩니다.

 내가 어느 상황에서 어떤 실수를 반복하는지, 상대 팀의 전략 패턴은 무엇인지, AI가 데이터를 분석하여 코치에게 알려줍니다. 전통 스포츠의 비디오 분석실이 AI로 진화한 것과 같습니다.

 머지않아 AR, 즉 증강현실과 VR, 가상현실이 e스포츠 관람의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입니다.

 안방에서 VR 헤드셋을 쓰고 경기장 한복판에 앉아있는 느낌으로 경기를 보는 날이 올 것입니다.

 좋아하는 선수 바로 뒤에서 그의 시선으로 경기를 함께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게임 이야기가 아닙니다.

 4차 산업혁명의 모든 기술이 e스포츠라는 플랫폼 위에서 만나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상하이, 로스앤젤레스와 함께 서울을 세계 최상위 e스포츠 도시로 꼽습니다.

실제로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결승전이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렸을 때 10분 만에 전석이 매진되었고, 세계 각국의 팬들이 서울로 몰려왔습니다.

 우리가 가진 위상이 이렇습니다.

 이것을 지키고, 더 높이 올려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7. 무예와 e스포츠,  닮은꼴 이야기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은 무예를 사랑하는 분들이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무예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끊임없는 수련, 상대를 읽는 통찰, 순간의 판단력, 그리고 정신력. 승리보다 과정을 중시하고, 패배에서 배우며,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하는 정신.

 e스포츠도 다르지 않습니다.

 프로 선수들은 하루 10시간 이상을 연습합니다.

 패배한 경기를 수십 번 돌려보며 자신의 실수를 찾아냅니다.

 팀원과의 호흡을 맞추기 위해 소통 훈련을 따로 받기도 합니다.

 대회 날, 수만 명의 관중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을 유지해야 합니다.

 형태는 다르지만, 수련의 본질은 하나입니다.

 무예가 몸을 단련하며 정신을 키운다면, e스포츠는 두뇌를 단련하며 전략적 사고를 키웁니다.

 어쩌면 이 두 세계가 서로 배울 점이 있지 않을까요.

 무예의 정신 수련 철학이 e스포츠 선수들에게, e스포츠의 전략적 분석 문화가 무예 훈련에 새로운 시각을 줄 수도 있습니다.

 경계를 허물고, 서로에게 배우는 것. 그것이 스포츠 정신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8. 우리가 준비해야 할 미래

 e스포츠 시장 전문가들은 이것을 '미래 100년의 먹거리 산업'이라고 부릅니다.

 과장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숫자는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이미 4조 원 규모의 시장이 형성되어 있고, 매년 19%씩 자라고 있으며, 사우디아라비아가 국가의 미래를 이 산업에 걸고 있습니다.

 한국은 이 분야의 선구자였습니다.

 종주국이었습니다.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저건 그냥 게임이야"라는 말 대신, "저 안에 어떤 가능성이 있을까"를 물어보는 시각.

 우리 아이가 게임을 좋아한다면, 무조건 빼앗기 전에 그 안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함께 생각해보는 여유.

 노인 복지 프로그램에 실버 e스포츠를 한 번 도입해보는 용기.

 그리고 e스포츠를 하나의 직업, 하나의 산업, 하나의 문화로 인정하고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사회적 노력.

 이 모든 것들이 모여, 한국이 e스포츠 종주국으로서의 자리를 더욱 굳건히 하고,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새로운 무대를 열어줄 것입니다.

 오늘, 이 이야기가 여러분의 마음속에 작은 씨앗 하나를 심었으면 좋겠습니다.

 게임을 다시 보게 되는 씨앗. 미래를 다시 상상하게 되는 씨앗.

 감사합니다.

 

본 기고문은 국제e스포츠진흥원 자료 및 글로벌 e스포츠 시장 분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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